[한마당] 쿠바의 ‘혁명 의사’
쿠바는 의사 부국이다. 세계보건기구(WHO) 2023년 통계에 따르면 인구 1만명당 의사수가 90명에 육박한다. 우리나라가 26명이니 놀라운 숫자다. 1인당 국내총생산은 7000달러 수준인데 의사 수만큼은 선진국을 능가한다.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아바나에 입성한 뒤 쿠바는 의료 위기를 맞았다. 바티스타정권이 붕괴하면서 의사 6000여명 중 절반이 국외로 탈출했고, 아바나의대 교수 161명 중 23명만 남았다. 이때 아르헨티나에서 의대를 나온 체 게바라의 ‘혁명 의학에 관하여’라는 연설이 나왔다.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공공보건서비스를 제공하고, 의료 전문가를 조직해 다른 나라의 혁명에 집중케 한다는 내용이었다.이후 카스트로정부는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의사를 배출했다. 1970년대부터는 매년 수백명, 1990년대에는 매년 3600명이 쏟아져 나왔다. 대부분 존경받는 동네 의사가 됐지만 외국에서 ‘혁명 의사’의 길을 택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1963년 알제리를 시작으로 기니, 앙골라 등 아프리카 독립전쟁에는 이들이 있었다. 1970년 이후에는 지진, 허리케인, 쓰나미 피해지역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벌였다.하지만 구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혁명 의사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국내에서는 택시기사보다 적지만 외국에서는 20배 넘는 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2013년 쿠바는 1인당 월 3600달러의 공급계약을 브라질과 맺었다. 의사의 몫은 10~25%였다. 나머지는 쿠바 정부가 가져갔다. 5년 뒤 의사들이 철수할 때까지 연 3억6000만 달러가 쿠바 정부로 유입됐다.지난 1월 베네수엘라 공격 이후 전방위적 쿠바 봉쇄에 돌입한 미국이 이 외화 창구를 틀어막았다. 마크 루비오 국무장관이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한 뒤 각국이 쿠바와의 계약을 속속 파기하고 있다. 과테말라 온두라스 자메이카 등에서만 1000명 넘게 돌아갔다. 당장 의료공백이 우려됐지만 미국의 압력을 버티지 못했다. 중동에서의 전쟁이 아무리 급해도 ‘서반구’만큼은 확실히 지키겠다는 미국의 면모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승욱 대기자
2026-03-15 15:40:00